묵혀뒀던 메모리 정리를 하다가, 은근 사진을 많이 찍어둬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길래 한번 시작이나 해볼까 하고 남기는 글.
유튜브에 영상 다 올리기로 해놓고 모든 여행의 Day1 브이로그만 만든 첫 단추만 꿰는 인간이지만, 지금은 잉여로운 시즌이니 한 3편은 쓰지 않을까!?
일단 나는 독일 키엘/킬/Kiel에서 6개월간 교환학생으로 있었다. 2018년 9월 1일부터 2019년 3월 1일까지 딱 반년을.
우리 학과에서 보내주는 교환학생이라 선택지는 네덜란드 로테르담과 독일 키엘 두 가지였고 여러 가지 이유로 독일을 선택했다(지금까지도 후회하는 큰... 실수). 사실 그때까지 여행은 아시아 안에서만 가봤어서 처음 유럽으로 간다는 설렘과, 교환학생 생활 자체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떠 있었다. 나는 3학년 1학기에 다녀왔는데 주변에 친한 친구들 중 교환학생을 다녀왔거나, 가있는 친구들이 없어서 조언을 들을 곳도 별로 없었다. 가기 전 반년 간 얼마나 꿈과 희망에 부풀어있었냐면, 개강 전 여행 일정이며 티켓을 다 끊어 놓고 지도에 그림 그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닥쳐올 시련을 모르고.... 내가 먼저 다녀온 뒤에야 친구들이 하나둘씩 교환학생을 준비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입에 달고 살던 소리가 제발 비자 문제 해결하고 가라, 도시로 가라, 너무 기대하지 마라 였다. 그냥 여행 다니는 거랑 잠깐이나마 거기서 살면서 그 나라의 행정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는 걸 난 너무 몰랐던 거다.
어쨌든 가기 전에 준비물은 각종 서류와 상비약, 멀티탭 등 블로그를 뒤져 교환학생 준비물에 해당하는 걸 체크해가며 챙겼는데 일단 운이 좋았던 건 내가 가는 곳은 우리 과 사람들이 매 기수 가는 곳이라 커피포트, 밥솥, 주방용품, 공유기 등을 물려받아서 써서 가져가거나 사야 할 게 크게 줄었었다.
가져간 것 중에 진짜 좋았던 건 욕실용 신발 물 빠지는 그거! 사실 나도 한 이주 먼저 간 친구가 강추해서 사갔는데 아니 대체 샤워실에서 씻고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욕실화가 없으면 샤워실에서 나와서 밖에 벗어뒀던 실내화에 계속 물이 내려오는 발을 어? 그러면 실내화가 축축해지는데 왜 욕실용 슬리퍼를 안 팔지. 하여튼 거기서는 그런 걸 구하기 힘들다고 해서 사갔었는데 엄청 유용했다. 특히 1인실이 아니고 여러 명이 쓸 경우엔 더. 난 옷도 사거나 택배로 받기로 했고, 대부분 물품이 윗 기수한테 받은 것 중에 있었기에 특별히 가져간 건 별로 없다. 베개, 이불은 간혹 가져가기도 하던데 난 겨울학기에 가서 가져가려면 두꺼운 이불이라 가져가기도 뭐해서 가서 이케아에서 샀다.
독일의 북부에 속하는 키엘로 가려면 함부르크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그때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는 티켓을 끊었었다. 왜 그랬는지 몰라. 그런데 도착 당일 FRA에서 함부르크로 가는 비행기가 경유 시간이 너무 짧았나 아예 없었나,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 이유로 프랑크푸르트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시내로 가지 않고 공항 근처 에어비앤비로 잡았었는데, 근처라고 해도 지하철 두 정거장은 가야 했다. 문제는 여기부터. 공항 도착 층에서부터 열차 타러 나가는 길을 못 찾은 나는 일단 한참을 헤맸다. 캐리어 두 개만 합쳐서 약 40kg이었던 것 같은데 그걸 끌고 실수로 직원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다시 내렸다가 하여튼 공항을 마구 헤매고 나서야 겨우 안내센터를 찾았다. 숙소 지도를 보여주고 거기 직원이 아예 열차 표까지 끊어줬는데, 아니 안내센터 직원이 타라는 열차를 탔는데 왜 거꾸로 가는지? 어이없어서 아직도 기억나. 이미 해가 져서 깜깜해졌는데 잘못된 걸 알고 내린 역이 하필 축구경기장 역이었다. 방금까지 경기를 보고 나왔는데 술 취한 사람들이 막 소리 지르듯이 노래 부르는데 길은 모르겠고, 점점 멘탈이 무너지는데, 정말 친절한 여자분이 도와주셔서 맞는 방향 열차를 타고 숙소 근처 역에 내렸다. 그런데 도로로 올라가려니 계단이 몽땅 있는 거다. 나 캐리어 두 갠데.... 40kg인데.... 계단 앞에 서서 한숨을 푹 쉬고 하나씩 들고 올라가 보려는데 또 한 번 엄청 친절한 남성 분이 나의 대따 무거운 대따 큰 캐리어를 들고 계단 위에 올려주셨다. 생각해보면 첫날부터 일도 많았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었다. 아니었음 죽었어!!!
분명 가깝댔는데 캐리어를 끌고 가서 그런가, 숙소는 너무 멀었다. 거기다 완전 주택가라 저녁 8시쯤 거리엔 인적이 드물었고 가로등마저 드문드문 있어서 너무 무서웠다. 돌로 포장된 길에 캐리어를 끌고 가는 소리만 드르르륵 울리고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은 완전 불량해 보이는 청소년들이고.... 한참 걸어서 지도를 따라갔는데, 하.... 집 문이 도로 쪽이 아니라 뒤로 돌아가야 있는 구조였는데 무슨 집에 조명이 없는 거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깜깜한 차고를 지나서,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꽤 넓은 집에 내가 묵기로 한 방 말고 방이 여럿 있는데 아무도, 정말 아무도 없었다. 에어비앤비 괴담 뭐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서워서 그때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우는 소리도 좀 했었는데, 중간에 너무 무서웠던 1시간을 대충 생략하면 다행히 집주인도 만났고 다른 사람들도 도착해서 갑자기 숙소가 아늑해 보였다는 그런 해피엔딩!
다음날은 시차적응이 쪼끔 덜 된 탓에 일찍 깼고 그래서 하루만 머무는 프랑크푸르트를 한번 둘러볼 겸 아침을 먹으러 나설 겸 산책을 했다. 밤에는 그렇게 무섭던 동네가 해 뜨니까 그냥 예쁜 동네더라. 아래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차고가 전날 밤 무서워 덜덜 떨며 지나던 곳인데 아침에 보니 멀쩡해서 약간 허무할 정도였다.
마을을 한참 돌아보고 몇 안 되는 아침에 연 식당에 가서 대충 아침을 먹고, 다시 짐을 들고, 공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역으로 갔다. 기차로 유명한 독일에서 키엘엔 대중교통이 버스뿐이라서, 예약했던 기차를 놓쳐서 등등의 사유로 열차를 몇 번 밖에 못 타봤는데 그래서 티켓 판매기를 다 찍어놓고 지우지도 않았나보다. 정말 다행히도 전날과 달리 공항으로 수월하게 돌아갔다.
함부르크로 가는 비행기는 1시간 가량만 타면 됐는데 국내선이라 수속도 일찍 마치고 시간이 남아서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때웠다. 한국 스벅보다 베이커리가 훨씬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뭐라도 먹고 싶었는데 아침이 저래 보여도 빵도 있고 꽤 거했는지 배가 계속 불러서 그냥 포기했다. 대신 음료만 시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하철 티켓도 붙여가며 일기를 썼다. 일기에 '얼마나 쓸 지 모르겠지만' 이라고 써뒀는데 이야, 스스로를 잘 알아.
그렇게 함부르크까지 온 뒤 함부르크 공항에서 키엘로 가는 공항버스, 내가 수없이 탄 바로 그 버스 키엘리우스를 탔다. 키엘이 작은 도시라고 들어서 함부르크 공항에 도착한 뒤 일에 대해서는 별 걱정이 없었는데 사진에서처럼 사람이 꽤 많아서 당황했다. 거기다 다들 짐이 많았는지 트렁크에 자리가 없어 한 시간을 기다려 다른 버스를 타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또다시 기적처럼 도움을 받았다. 내가 트렁크 안에 자리를 못 만들고 이따만한 캐리어를 들고 당황하고 있으니 베트남 유학생 무리가 갑자기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며 짐을 이리저리 정리하더니 내 짐까지 실어줬다. 고맙다고 오백번 얘기하고 내려서도 인사했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들을 아시안이 드문 키엘에서 다시 못 봤네.
나는 이렇게 아주 한참만에 키엘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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