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엘에 도착했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내가 키엘에 도착한 18년 9월 2일은 일요일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 그러니까 나는 비행기를 잘못 끊은 죄로 프랑크푸르트에서 1박, 키엘에서 또 1박을 해야 했다. 내가 멍청해서 고생하는 이야기는 앞으로도 아주 아주 많다.... 기숙사 입사를 도와주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그건 사무실 운영이 끝난 평일 오후에 이용할 수 있고 나는 일요일에 도착했으며 월요일 오전에 빨리 들어가고 싶었기에 결국 혼자 하는 고생길을 선택했다. 제발 이러지 말기. 어쨌든 또 40kg 캐리어를 끌고 오르막을 오르고 올라 중앙역 근처 숙소 에어비앤비로 갔다.
내가 키엘에 도착한 날은 그 후로 겪은 모든 날 중 top 3 안에 드는 맑고 청명한 그러니까 전혀 키엘답지 않은 날이었다. 난 이 날 이 날씨에 속아 키엘이 엄청 아름다운 곳인 줄 알았었다.... 날씨도 좋은데다 앞으로 반년을 살아갈 도시를 좀 알고 싶어서 숙소에 짐을 넣어두고 바로 뛰쳐나와 중앙역부터 항구를 쭉 걷기 시작했다. 이 도시의 가장 번화한 곳을 걸으며 나는 키엘을 오해해버렸다. 내가 살 곳도 이럴 줄 알았단 얘기다. 첫 답사에 영화관이 있는 것도 확인했고(시간표를 보니까 죄다 독일어라 당황했지만 어쨌든!) 영화관 옆옆에 있는 케밥집에서 바디랭귀지로 어찌어찌 산 케밥이 싸고 맛있었던 데다가, 다리를 건너 바다와 중앙역을 바라보니 너무 예뻤다. 아마 이때 키엘을 제일 사랑했음.
다음날 아침은 일찍부터 일어나 또 짐을 몽땅 사서 중앙역으로 갔다. 전날 연락이 닿은 친구도 키엘에 와있다길래 같이 보험, 기숙사, 이케아를 처리하기로 했었다. 독일에선 보험이 꼭 있어야 한대서 공보험도 알아봤지만 너무 비쌌기에 한국에서 들어간 사보험을 AK인가 독일 보험회사에 가져가 스탬프를 받으면 문제가 없다고 해서 그렇게 처리하기로 했다. 접수를 잘하고 대기하고 있는데, 예상 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번호표를 주는 게 아니라 개인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이 나와 사람을 불러가는데 독일식으로 내 이름을 불렀는지 한참을 기다려서 나보다 뒤에 온 사람이 들어가도 내 이름 비슷한 건 듣지를 못했다. 결국 친구가 들어간 사무실에 같이 들어가 같은 업무인데 처리해 줄 수 있느냐, 어떤 사람이 날 부른 것 같긴 한데 잘 못 알아듣겠다, 상황설명을 구구절절하고 무사히 도장을 받아왔다.
엄청 큰 캐리어를 들고 사흘간 이동하니 너무 힘들었지만 이제 기숙사로 가는 길이다. 친구랑은 기숙사 건물 자체가 다르고 기숙사끼리 꽤 떨어져 있어 헤어졌다. 기숙사 배정에도 할 말이 많은데, 짧은 버전으로는 우리에게 선호 기숙사를 고를 기회가 오지 않았고 심지어 누락(!!!)되어 있어 뒤늦게 기숙사를 통보받았다. 그래서 그때 날아왔던 서류에서 내 방은 4인실이라는 말만 들었었다. 사무실에서 이후에 시청에 제출해야 할 서류를 받고, 이것저것 처리하고 10유로를 내면 기숙사에서 이불과 베개를 준다길래 당연히 하겠다고 하고 받았는데, 10유로라 싸다 했더니~ 이불이랑 베개 '커버'였다. 음.... 하여튼 드디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그곳, 내 기숙사로 향했다.
유럽이 전반적으로 그런 것 같은데 도어록을 안 쓰고, 카드키도 아니고 진짜 열쇠를 써야 한다. 그런데 이 열쇠랑 문이 동네마다 문마다 여는 법이 조금씩 다른데 우리나라에서처럼 달칵 소리가 한번 났다고 그냥 문을 열려고 하면 절대 안 열리고 한 바퀴 반 정도는 돌려야 하는 것 같다. 엄청 큰 캐리어를 또 옆에 세워두고 문을 못 열어서 문 앞에서 한참을 문이랑 씨름했다. 이럴 때마다 문도 못 여는 사람이 되어 초라해지는 것 같아서 그 열쇠와 새로 마주치는 너무 싫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신발장이 있고 우측에는 같이 쓰는 공간인 주방, 샤워실, 화장실이 있고 좌측에는 방 4개가 있었다. 두 개씩 마주 보고 있는 구조로. 내 방은 현관에서 제일 가까운 방이었고 플랫 안에는 아무도 없어서 일단 내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혼자 살기엔 부족함이 없었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좋았다. 다만, 보다시피 1층이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고 심지어 내 방 바로 앞이 자전거 보관대라 커튼을 열면 사생활이고 뭐고 없는 구조.... 바깥에 지나다가 나랑 눈 마주치면 모르는 사이면서 엄청 신나게 인사해서 웃기면서 당황스러웠다.
내 개인 방은 부족할 게 없었지만 문제는 공용공간.... 화장실이며 샤워실 주방 모두 넓긴 했는데 진짜 말을 못 할 정도로 더러웠다. 아니 남은 음식을 왜 프라이팬에 그대로 보관해서 곰팡이를 배양하냐고! 냉장고를 열어도 가관이었다. 냉동실은 성에가 얼마나 꼈는지 안에 뭘 넣을 수가 없었고 냉장실도 뭘 안 버리나 심란 그 자체. 아무리 신발 신고 다닌다고 해도 그렇지 주방 바닥이 너무 더러웠고 인덕션 상태도 안 좋고 오븐도 있길래 열어봤는데 거기 뭐 넣으면 최소 사망. 와중에 나는 다음날 오전 비행기로 런던에 가서 이 주간 여행하고 돌아올 예정이었기에 청소를 할 시간도, 기숙사를 옮길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미리 들었지만 직접 목격하니 너무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래.... 나중에 독일인 친구한테 들으니 대부분의 기숙사들은 내 방보다 더 더럽고, 나는 매우 양호한 수준이었다고 했다. 더 충격. 하여튼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 다음날 나갈 때까지 만날 수 없었던 룸메들에게 새로 들어온 누구인데 집 상태가 이래서 놀랐다, 내 책임은 아니니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정리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과 번호를 남기고 떠났었다. 여행 중 답변이 왔는데, 방학 중이라 셋 중 둘은 떠나 있었고 남아있는 한 명이 대충 살아서 그런 것 같다며 미안하다는 메시지였고 알고 보니 내 룸메들은 세 명 다 남자였다. 두 명은 독일, 한 명은 네팔.... 이런 상황도 대충 알고는 갔지만 여자 룸메가 하나도 없을 줄이야!
멘붕을 뒤로하고 친구와 이케아를 가기 위해 만났다. 그 전 기수 사람들이 남기고 간 물건도 있고 나는 바로 다음날 떠나야 하니 당장 필요한 것들만 샀는데도 다 들고 돌아오는데 꽤 힘들었다. 그렇다고 배달을 하기엔 배달 비용이 너무 비싸서 포기하고 다 짊어지고 버스로 돌아왔다. 이케아는 넓고 사고 싶은 것도 많고 없는 게 없는 그런 곳이지만 생각보다 싸진 않아서 혹시 그냥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게 있는지 확인하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중에 euroshop이나 그냥 rewe 같은 데서 보고 후회한 것도 있었음.
여행 가려고 일정을 빡빡하게 잡아두는 바람에 딱 하루 만에 대충 뭘 갖춰둬야 해서 엄청 바빴었던 키엘 2일 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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